최초의 ‘실패한 계엄령’ [전우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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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18:50:15
전우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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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의 ‘실패한 계엄령’을 만든 건 "시민들"
내란에 가담, 동조한 자들을 철저히 색출해 확실히 처벌해야
▲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의 계엄 포고령 비교 (출처=MBC뉴스)

‘계엄(戒嚴)’이란 ‘경계를 엄히 한다’는 뜻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이 왕에게 집중되어 있고 군인과 경찰이 분리되지 않았던 중세에는 왕이나 군 지휘관이 수시로 계엄령을 발할 수 있었다. ‘도적떼가 창궐하니 경계를 엄히 하라’ 같은 명령이 계엄령이었다. 

 

하지만 형식상으로라도 3권이 분립되고 군인과 경찰의 책무가 명확히 분리된 뒤, 계엄령의 의미가 달라졌다. 사법권과 치안권 일체를 군 통수권자가 독점하는 행위인 근대의 계엄령은 3권 분립과 군경(軍警) 구분을 중단하고 중세의 ‘전제군주제’를 부활시키는 명령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9년에 제정, 공포된 『대한국 국제』에 통치자의 계엄 선포권이 처음 규정되었다. 하지만 고종과 순종은 물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도 실제로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물론 일제강점기는 ‘사실상의 계엄 기간’이었으니, 굳이 계엄을 선포할 이유도 없었다.
 

▲ 여수 순천 사건 진압한 계엄군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계엄령을 선포했다. 1948년 11월 제주 4.3과 여수 순천 사건 진압을 명목으로 발동한 계엄령은 제주도민의 1/5 가까이가 목숨을 잃은 뒤에야 해제되었다. 

 

이승만은 전쟁 중인 1952년에도 부산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 구금한 뒤 개헌을 강행하여 종신집권의 기반을 마련한 뒤에야 해제했다. 군통수권자이면서 전쟁이 일어날지 까맣게 몰랐던 무능,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먼저 도주하고선 서울시민들에게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거짓말 방송을 했던 파렴치,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거창 양민학살 사건 등으로 수십 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잔인함,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역시 수만 명을 굶겨 죽이고 얼려 죽인 부패 등으로 인해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없자 벌인 ‘친위 쿠데타’였다. 미군과 국제사회는 “반민주 정권을 지원할 수 없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권력욕에 눈 먼 이승만 일당은 이조차 묵살했다.


▲ 1961 박정희의 516쿠데타

 

1961년 5월 16일, 군대를 끌고와 서울을 점령한 박정희 일당은 곧바로 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공표했다. 계엄 선포권은 대통령의 권한이었지만, 쿠데타 세력에게 헌법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포고령 1호의 내용은 ‘① 일체의 옥내외 집회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는 일체 출국하지 못한다. ③ 언론보도는 사전에 검열을 받아야 한다. 만화, 사진 등 혁명에 관계되는 보도는 사전검열을 받아야 한다. 외신 전재(轉載)도 이에 준한다. ④ 일체의 보목행위를 금한다. ⑤ 직장을 이탈하지 못한다. ⑥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지 못한다. ⑦ 통금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통금시간은 하오 7시부터 익일 상오 5시까지로 한다. 이상 포고령에 위반한 자는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하여 극형에 처한다.’였다.

 

이 비상계엄은 군사쿠데타 성공이 확실해진 뒤 ‘경비계엄’으로 전환했다가 ‘민정을 가장한 군정’이 확실해진 뒤에야 해제되었다.


1964년 6월 3일,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고조되자 박정희 정부는 서울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4개 사단을 동원해 진압했다. 군사정권은 필요할 때마다 군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 1972.10.17 '계엄포고 제 1호'를 발표하는 노재현 계엄사령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다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박정희는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 헌법 일부 기능 중지, 비상국무회의 작동 등 4개 항의 비상조치를 담은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 비상계엄은 1인 독재, 종신집권 체제를 확정한 ‘유신헌법’ 제정 이후에야 해제되었다. 

 

박정희는 부마 항쟁에도 계엄령으로 대처했다.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이 죽어도 까딱없는데, 우리도 데모하는 놈들 100만-200만 명 죽인다고 까딱있겠습니까?”라고 했다던 바로 그때였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제거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 1980. 광주 금남로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  

 

박정희가 사망한 뒤 정부는 다시 계엄령을 발포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은 계엄 철폐, 민주화 일정 제시 등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집중되었다. 1979년 12월 12일 군부를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와 동시에 군부는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 계엄령은 전두환 정권 탄생이 확실해진 뒤에야 해제되었다. 이것이 지난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의 마지막 계엄이었다.
 

비상계엄 선포는 근대적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유사 전제왕정’을 만드는 행위이며, 국민 일반의 기본권을 제한, 박탈하는 행위이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이다. ‘국민과 국가에 대한 범죄’가 너무나 크고 무겁기 때문에, 일단 계엄령을 선포한 자는 자기 안전이 확보되기 전에는 해제하지 못한다. 계엄 선포는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킨다. 비상계엄 체제가 반드시 ‘1인독재 종신집권 체제’로 이어져 온 이유이다. 

 

▲ 2024.12.3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계엄군 (사진=연합뉴스)

 

윤석열의 이번 계엄 선포는 그가 내세운 이유가 무엇이든, 궁극적으로 한국 민주주의 체제를 철저히 파괴하고 ‘유사 왕정 체제’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 ‘내란죄’를 멀찍이 넘어서는 실질적인 ‘국체 변경’ 모의였다.


1987년 헌법은 계엄 선포를 통한 헌정 파괴가 거듭되어 온 역사를 거울 삼아 국회에 ‘계엄 해제권’을 부여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윤석열 일당은 계엄 선포와 동시에 군대를 보내 국회를 장악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하여 계엄 해제를 막고자 했다. 이 파렴치한 작전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은 한순간에 ‘중세 왕조국가’로 전락했을 것이다. 

 

▲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마자 국회 앞에 모여'계엄 해제'를 외치는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수많은 시민이 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갔다. 총을 든 군인들이 나타났어도 그들은 위축되지 않았다. 장갑차 앞에 주저 앉고 총 든 군인들을 맨몸으로 막아서며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았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실패한 계엄령’을 만든 것은, 바로 시민들이었다. 정부 고위 공직자들은 윤석열 일당이 내란을 획책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으려 들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막았다. 이 점이 이 나라의 절망이자 희망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내란 사태가 주는 교훈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나라를 온전히 맡겨서는 안 되며, 시민들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때로는 직접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란에 가담, 동조한 자들을 철저히 색출하여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란의 재발을 막는 길이며, 1987년에 완성하지 못한 ‘민주화의 과제’를 완수하는 길이다. 시민들이 처음으로 계엄령을 막아낸 이 경험이, 새 역사를 만드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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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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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댓글 >

댓글 7

  • 로사맘님 2024-12-15 01:14:24
    전우용 박사님..감사합니다.
  • 조항일님 2024-12-13 13:23:54
    계엄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방송에서 영구집권과 관련해 하신 말씀을 듣고나서 시민들의 행동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 깜장왕눈이 님 2024-12-13 08:48:52
    국민을 총칼로 죽이는 자들이 어찌 인간인가!!! 권력만을 탐하는 자들을 역사와 국민이 심판하고 처단하라
  • 달여울님 2024-12-13 07:44:38
    박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의 시대에 이런일이 있을거라고는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무식 무도한 윤석열정권 여기서 끝내고 우리는 더 활짝 민주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 달려라하니님 2024-12-12 22:45:12
    국민은 늘 위대했다. 오늘도 새 역사를 써내려가는 국민들과 전혀 그렇지 못한 부끄러운 내란 수괴들
  • 밤바다님 2024-12-12 21:13:27
    '내란에 가담, 동조한 자들을 철저히 색출하여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란의 재발을 막는 길이며, 1987년에 완성하지 못한 ‘민주화의 과제’를 완수하는 길이다. 시민들이 처음으로 계엄령을 막아낸 이 경험이, 새 역사를 만드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전우용 박사님 칼럼 완전 격공하며 잘 봤습니다~^^
  • WINWIN님 2024-12-12 19:55:15
    전우용박사님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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