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언론인가? [전우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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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2 13:00:52
전우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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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나치가 폴란드에 세운 수용소 모습 (사진=Google)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만든 유대인 수용소들을 무대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은 대개 ‘악랄한 나치 독일군 대 선량하고 무고한 유대인 희생자’들의 대립 구도를 설정한다. 

 

그런 서사(敍事)에 영향을 받은 보통사람들도 수용소 하면, 포악하고 잔인한 권력이 자기들에게 비판적인 선량한 사람들을 가둬 두고 학대하는 곳을 떠올린다. 

 

그런데 정말 수용소 안에서도 선(善)과 악(惡)은 대립할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자기가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해 책으로 펴냈다. 그가 겪은 바에 따르면, 수용소 안에는 ‘선량(善良)’이 없었다. 

 

독일군이 준 완장을 차고 같은 유대인들을 혹사하는 자, 독일군에게 잘 보이려 같은 유대인들을 모함하거나 밀고하는 자,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으려 아귀다툼을 벌이는 자들만 넘쳐났다. 

 

겸손, 양보, 절제 같은 인간의 미덕을 지키는 사람들은 수용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수용소 안에서 ‘선량’은 무능이나 무기력과 동의어였다. 

 

수용소는 죄 없는 사람들을 가둔 독일군들뿐 아니라, 죄없이 잡혀 온 사람들에게서도 인간다움을 빼앗았다. 그곳에서는 늘 짐승 수준으로 타락한 인간성의 밑바닥이 전시되었다. 

 

프리모 레비는 자기 책에 <이것인 인간인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민족 대표로 서명했다가 투옥되었던 이승훈이 석방되던 날, 후배들이 찾아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승훈은 “삼천리가 다 감옥인데 안이나 밖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밖에 있던 자네들이 더 고생했을 테지.”라고 답했다. 

 

식민지 체제나 독재체제는 사회 전체를 수용소처럼 만든다. 

 

이런 체제에서는 악한 권력에 빌붙어 완장 차고 으스대는 자들, 선량한 사람들을 무고하거나 밀고하는 자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신념 아래 자기만 살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자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런 ‘수용소 국가’에서 착한 사람은 살아남기 어렵다. 약삭빠름, 교활함, 의리 없음 같은 악덕들이 오히려 생존에 필수적인 덕목이 된다. 

 

악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선량한 사람들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취급받으면서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더러운 물에 살던 물고기는 깨끗한 물에서도 살지만, 깨끗한 물에 살던 물고기는 더러운 물에서 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차량 (사진=연합뉴스)

 

2030 엑스포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던 한국 정부가 국제 행사 유치 외교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119표 대 대한민국 부산 29표. 182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중 단 29개국만 부산을 지지했다. 

 

보통 엑스포, 올림픽, 월드컵을 세계 3대 이벤트라고 하는데, 이들 중 엑스포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엑스포는 제국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제국주의적 이벤트였다. 제1회 엑스포에서 전시된 증기기관차는 시공간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감각을 바꿨다. 

 

원동기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은 인류에게 시간을 단축하고 공간을 압축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다. 스포는 ‘공간 압축’을 구현하는 행사였다. 

 

전 세계를 압축하여 어떤 나라의 일부 구역에 가져다 놓는 것은 그 나라의 세계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엑스포가 시작된 지 한 세기 가깝도록, 이 행사는 이른바 ‘열강(列强)’들에서만 열렸다. 그래서 엑스포 개최국이 된다는 것은 열강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엑스포가 시작된 지 170년이 넘었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에서 두 차례, 중국에서 한 차례, 최근 아랍에미리트에서 한 차례가 열렸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전 과학 엑스포와 여수 해양 엑스포는 엄밀한 의미에서 ‘만국박람회’가 아니라 BIE가 엑스포로 ‘쳐주는’ 인증 박람회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우리나라는 이른바 ‘선진국 그룹’에 진입했고, 경제력이나 군사력, 국민의 평균 교육 수준, 한류(韓流)로 표현되는 소프트 파워 등 여러 면에서 ‘열강(列强)’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만했다. 

 

하지만 윤석열이 대통령인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세계의 평가는 냉혹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프리젠테이션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느니, “2차 투표에서 충분히 역전 가능하다”느니 하며 외신의 분석과는 전혀 동떨어진 보도를 하던 한국 언론들은 역대 최악의 성적표가 나오자 ‘석패(惜敗)’라는 둥, “오일머니의 벽이 높았다”는 둥, 심지어 “1국 1표제에 문제가 있다”는 둥 하며 마치 사우디아라비아가 부정한 방법이라도 쓴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엑스포 유치 운동에 쓴 돈만 대통령 부부 해외순방비를 제외하고도 5,744억 원이다. 

 

정부 주장에 따르면 엑스포와는 아무 관계 없는 법무부 장관도 바쁜 일정을 쪼개 몰타와 안도라에까지 가서 엑스포 유치 외교를 펼쳤다. 

 

그런데도 오일머니의 벽을 넘지 못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유치 운동에 2조 원 넘게 쓰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랬다는 증거는 있는가? '1국 1표제'가 문제라니, UN을 해산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나라의 크기에 관계없이 주권의 크기는 동일하다는 것은 19세기 말 이래 국제법의 일관된 원칙이다. 

 

모름지기 언론인이라면, 엑스포 유치 선언부터 시작해 유치 운동의 전 과정을 냉철히 분석하고 6천억 원 가까운 돈을 허공에 날려 버린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를 두둔하려고 성적 떨어진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늘어놓는 변명보다도 유치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것이 언론인가?”
 

대통령 부인이 명품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는 증거가 공개되자, 대통령실은 반환할 때를 놓쳐 ‘반환 선물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변명하고 심지어는 ‘북한 공작금 유입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반환 선물 보관 창고가 청와대에도 있었는지, 아니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새로 만들었는지, 해당 명품 가방이 입고된 때가 선물 받은 직후였는지, 아니면 사실이 공개된 이후인지, 이 창고에 보관된 ‘반환 선물’의 수량과 가액은 어느 정도인지, 반환해야 할 정도로 부적절한 선물이라고 판단했다면 왜 고발하지 않았는지, 모름지기 기자라면 궁금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북한 공작이라니. 북한 공작원이 대통령 부인에게 가방을 강제로 떠안기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대통령실의 말 같지 않은 ‘해명’만 보도할 뿐, 그렇게 잘하던 ‘의혹 제기’는 하지 않는다. 

 

깨끗한 물에서 활기차게 헤엄치던 물고기가 더러운 물로 옮겨진 뒤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심하고 처량하다. 

 

“이것이 언론인가?”
 

해야 할 말은 마음에 담아 두고 권력의 눈치나 보면서 권력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는 언론인이 많아졌다. 

 

수용소에 갇힌 자들의 인간성이 이 땅의 언론인들에게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 ‘인간성의 밑바닥’은 언론 매체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되고 마침내는 온 나라에 가득찬다. 

 

수용소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고, 수용소 같은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도 ‘해방’이며, 수용소 같은 독재체제를 끝내는 것도 ‘해방’이다. 

 

‘해방’은 인간이 수감자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자, 본연의 인간다움을 되찾는 일이다. ‘약삭빠르고 간교하게 살아야 성공하는’ 사회를 ‘착하게 살아야 복 받는’ 사회로 바꾸는 것이 자기와 후손들의 ‘인간성’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세상이 수용소처럼 되어 가고는 있으나, 아직은 식민지 시기나 군사독재 시기보다 낫다. 

 

옛 사람들은 해방을 위해 목숨을 던져야 했지만, 지금은 표만 잘 던지면 된다. 억눌린 인간성이 해방될 수 있다는 꿈을 꾸는 것, 그것이 공동체의 진정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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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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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1

  • 늘솔길님 2023-12-09 22:25:31
    전우용박사님 역사 강의 듣다 보면 존경은다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 이만우님 2023-12-07 12:38:44
    전우용 박사님 좋은글 고맙습니다.
  • 임율리님 2023-12-06 14:12:19
    존경하는 전우용박사님의 칼럼 구구절절 새겨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행복앤기쁨님 2023-12-05 10:14:44
    혜안을 가지고 계신 어른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서님 2023-12-04 15:42:39
    좋은글 감사합니다
  • Kkm님 2023-12-04 06:16:12
    와~~~좋은글 감사합니다
  • 밤바다님 2023-12-03 21:25:24
    권력의 힘에 기생하려는 언론...
    부끄러움을 모르는 기자들도 많지만
    자신의 힘듦을 감수하면서 깨어있는 방송인과 참 기자분들도 있기에...
    또 박사님처럼 가르침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기에 거짓도... 진실도 들어나서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습니다!!!
    전우용 박사님 좋은 글 공감하며 잘 봤습니다~^^
  • 이진섭님 2023-12-03 09:56:09
    여기 전우용박사님 이런 이 시대의 참 지식인
    우리나라 참 지식인은 다 어디로 숨었나
  • Moran님 2023-12-02 23:59:33
    박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 WINWIN님 2023-12-02 23:14:00
    늘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이렇게 망가지는데 왜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정말 한심하고 답답합니다. 전우용박사님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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