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4·3 당시 형무소에서 사살된 수용자들의 시신 (제공=제주4·3평화재단) |
분단의 땅 한반도는 피비린내가 멈추지 않은 학살과 질곡의 역사다. 해방정국에서 일어난 빨갱이 사냥은 국군과 미군에 의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1946년 8월 15일 광주 8·15 기념식에 참석하려던 3천 화순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미군 제40사단이 토끼몰이 사냥이며, 1946년 10월 1일에 미군정하의 대구에서 발발한 ‘대구 10.1사건’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는 금기사항이다.
■ “현대사를 가르치지 말라”
1948년 10월, 제주 4.3사건의 진압 출동 명령을 받고 "같은 민족에게 총을 쏠 수 없다", "미제 침략 반대", "단선단정 반대"를 내걸고 부대를 이탈해 일어났던 여순사건이며 공비토벌이라는 이름의 빨치산 토벌과 전쟁 중에 일어난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국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보도연맹 성원에 대한 민간인학살,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비롯한 전국에 걸친 양민학살사건 등은 아직도 학생들이 배우는 현대사에서 조차 다루기 꺼리는 부분이다.
「혓바닥을 깨물 통곡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전사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1948년 5.10단선반대투쟁을 계기로 제주도에서 일어난 4.3항쟁을 이산하 시인은 '한라산'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 |
▲ 연작시 '한라산'으로 제주 4·3 사건을 알린 이산하 시인 (사진=연합뉴스) |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한반도 제주, 그 제주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슬픔을 간직한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한라산과 오름들 곳곳마다 학살의 상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야만의 광풍이 제주도를 뒤덮었다. 국가권력에 의한 처참한 인권유린과 살륙의 현장이 바로 우리 제주도 4·3의 역사다.
4·3 항쟁의 발발 원인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을 계기로 제주 사회에 긴장 상황이 있었고, 그 이후 외지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서북청년단에 의한 검거 선풍, 테러, 고문치사 사건 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 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 |
▲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가해자는 누구인가
‘죽어 마땅한 빨갱이들(?)...’이었기에 억울해도 입도 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 제주 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사망자 14,822명... 그러나 학자들은 제주 도민의 8분의 1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는 3만 명에서 8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희생자 중에는 10세 이하가 770명이다. 11~20세가 2,464명, 21~30세 5,461명, 31~40세 2,291명, 41~5-세가 1,383명... 70세 이상이 344명이나 된다.
젖먹이를 포함한 걸음마를 하는 애기들은 지금도 무덤도 없이 북촌리 너븐숭이 돌무덤에 무심한 장난감만 여기저기 널려 있다. 유가족은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2003년까지 무려 58년의 세월을 숨죽이면서 속으로 울어야 했다. 사람들은 제주 4·3항쟁의 가해자를 대한민국의 국군과 서북청년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미군정기간의 점령군이었던 미국의 육군, 공군이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동족을 학살하는데 동원을 거부한 여순항쟁을 아직도 반란이요,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반민족 세력들은 ‘빨갱이’라는 무기로 분단을 고착화하고 외세와 결탁해 주권자로 군림하고 있다.
![]() |
▲ 제주 4·3사건 '계엄선포' 문서 원본 (제공=대한민국역사박물관) |
■ 남한의 군·경과 우익청년단 그리고 미군에 의한 자행된 학살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기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국전쟁을 전후로 하여 약 1백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중 90%가 남한의 군경과 우익청년단 그리고 미군에 의한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민간인 학살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국가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민족적이거나 인종적 학살이 아니라 이념에 바탕한 배타적 국가권력을 확보 및 강화하려는 정치적 학살이었다.
제주도 진압작전에서 전사한 군인은 180명, 경찰 전사자는 14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4·3사건 당시 희생된 서청, 대청, 민보단 등 우익단체원들은 ‘국가유공자’로 정부의 보훈대상으로 보훈처에 등록된 4·3사건 관련 민간인 국가유공자는 모두 639명이다. 4.3항쟁은 대통령이 희생자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까지 했지만 해방전후사에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는 아직도 죄인이다.
4.3항쟁은 대통령이 희생자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까지 했지만 해방전후사에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는 아직도 죄인이다.
![]() |
▲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을 찾은 유족들. 2023.4.3 (사진=연합뉴스) |
대한민국은 희생자들이 흘린 피가 피워낸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그 희생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제주에 수학 여행을 가는 학생이 정방폭포와 관덕정 언덕이 항쟁의 현장이며 5.10단독선거 과정을 떳떳하게 가르칠 날은 언제쯤일까? 현대사를 떳떳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역사교육으로 억울하게 숨져간 4.3영령들이 편히 잠들 날이 오기나 할까.
[저작권자ⓒ 시사타파NEWS.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