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교과서보다 더 똑똑합니까?” 교과서만 바꾼다고 달라지는 것 없다 [김용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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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9 09:00:58
김용택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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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시간, 학생의 항의...이제는 답할 수 있을까
국정 교과서 발행하는 국가는 OECD 34개 국가 중 3곳 뿐
▲ 국민윤리 교과서 (이미지=시사타파뉴스)

 

초등에 근무하다 중등학교 사회과 교사로 발령 받은지 몇 년이 안 된 어느 해, 윤리 교과목을 담당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국민윤리라는 교과서는 동족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윤리 과목을 가르치다 화가나 독백처럼 이런 걸 가르치라니... "이런 내용을 배우면 통일이 아니라 분단상황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겠다. 교과서가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항의 조로 한 말이다.


■ 동족에게 적개심을 가르치라니...


국민윤리 교과서는 계륵이었다. 가르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대로 가르치면 훗날 거짓말쟁이 교사가 될 판이니 이런 교과서를 만든 유신정권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학생들 부모 중에는 국정원이나 정보과에 근무하는 경찰의 자녀도 있을 수 있으니 잘못 말했다가는 ‘북침설’을 주장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워 끌려가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이건 더 똑똑한가, 덜 똑똑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문제"라고 궁색한 변명(?) 아닌 변명으로 얼버무렸지만 교과서의 지식만을 전달해야 하는 교사들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교과서...! 국정교과서란 무엇인가? 당시 국민윤리 교과서는 물론이요, 사회과 교과서는 대부분 국정교과서였다. 국정교과서란 정부가 필요하다고 선정한 지식을 골라 담은 교과서다. 분단상황이라는 걸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교사를 믿지 못하니 이런 기막힌 현실이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고등학교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을 비롯한 터키, 그리스, 아이스란드, 방글라데시이고 검정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독일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국가는 터키,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 3곳 뿐이다.

 

▲ (출처=픽사베이)

■ 세계 229개국 80억 인구 중 또같은 사람은 없다


현재 세계에는 약 229개국 80억 인구 중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심지어 일란성쌍생아도 자세히 보면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사람의 외모처럼 생각이나 가치관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내가 가르쳐 주는 것만 알아야 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해!” 세상에 이런 폭력이 또 있을까? 그것도 판단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사람들에게 똑같은 지식을 암기시켜 똑같은 생각을 하게 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민주주의 국가는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다. 민주시민을 길러내겠다는 교과서에 모든 국민이 똑같은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는 것은 폭력이요,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독일의 교사 양성 기간은 일반적으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와 심리상담사 다음으로 오래 걸린다. 교사가 되려면 교육학 외에 두 과목을 전공해야 하며 3년간의 학사 과정과 2년간의 마스터 과정을 마친 후 18개월 동안 ‘교사 실습 과정(Referandariat)’을 거쳐야 한다. 18개월간의 ‘교사 실습 과정’ 동안 예비 교사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한다. 이는 매주 12시간의 수업 준비와 교사 실습생 세미나 참석, 교육 교사가 참관하는 16번의 수업 준비, 각 전공과목당 1번의 최종 수업 시연, 교사의 일반적인 업무, 소논문, 구두시험 준비 등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 우리나라 교사 양성의 자질


우리나라의 교사들이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수한 교사를 뽑아 교육현장에 투입되기만 하면 교사는 ‘교과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교과서 외에 다른 얘기를 하면 “선생님 공부합시다”라는 말이 범생이들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수학능력고사를 치러야 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필요한 안내와 지혜가 아니라, 수학 문제까지 달달 외우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이요 교사들의 책무다. 교육과정은 뒷전이요, 교과서 지식이 금과옥조요, 수능 출제 빈도가 높은 문제를 잘 풀어주는 교사가 가장 유능한 교사다.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학교를 불신하고 학원을 더 선호하는가? 수학능력고사의 결과에 따라 사람의 가치까지 서열이 매겨지는 상황에서는 삶을 안내해 주는 교사가 아니라 족집게 교사가 더 훌륭한 교사다. 일류대학에 몇 명을 더 입학시키느냐에 따라 유능한 교사 여부가 결정된다. 자유발행제든 검인정제든, 국정제든, 수학능력고사를 앞둔 대한민국의 교실에는 학생들에게 삶을 안내하는 교육이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교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 교과서의 지식을 암기시켜 일류대학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일 뿐이다.

 

▲ (출처=픽사베이)

■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는....?


현재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교과서는 국정제·검정제·인정제를 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중·고교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국정과제로,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되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3~4학년은 2022년 3월, 초등학교 5~6학년은 2023년 3월부터 새 교과서 제도가 단계적으로 적용되었다. 자유발행제는 고등학교 도서 중 기존 인정도서는 현행대로 유지하고, 신규 출원 과목과 학교장 개설과목에 한해 적용된다.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교, 수학능력고사를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는 현실에서 좋은 교사, 훌륭한 교사란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훗날 제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험 점수 몇 점 더 잘 받게 해 일류대학에 보내는 게 교사다. 정의보다 정직을 지혜보다 지식을 많이 암기시켜 수학능력고사 점수를 잘 받게 하는 현실을 두고 내일의 주인공이 될 제자들에게 삶을 안내하는 훌륭한 교사를 기대할 수 없다. 

 

수학능력고사를 그대로 두고 교사 양성 과정의 개혁도 없이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골라 교육과정 달랑 던져준다고 학교가 살아나지 않는다. 조령모개식 입시처럼 교과서만 바꾸면 교육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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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댓글 >

댓글 2

  • WINWIN님 2025-03-09 18:49:48
    늘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 밤바다님 2025-03-09 09:58:55
    글서 저런 술뚱내란외환수괴자 같은 자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거!!!

    김용택 위원님 늘 격공하며 많은 생각과 함께 좋은 글 잘 보고 있으며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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