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지시·성과 중심 국정운영…공직사회의 자율성과 전문성은 어디로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SNS 정치,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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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대통령. (원본 사진=연합뉴스) |
대통령이 실용을 강조하고, 국무회의에서 직접 지시하며, SNS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은 과연 새로운 국정운영 방식일까.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을 지켜보면서 과거 이명박 정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대통령의 정치적 배경과 지향은 다르지만, 실용주의를 앞세운 통치 방식에서는 닮은 점이 발견된다. 그 유사성이 단순한 우연인지,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징후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7년 12월 20일, 이명박(MB)은 대통령 당선 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실용주의를 표방하겠다고 밝혔다. 실용주의는 외교뿐 아니라 경제·교육·복지 등 모든 정책 분야에 적용됐고, 정부의 기조를 '창조적 실용주의'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남북관계에도 이러한 관점이 투영됐다.
2009년 5월 황석영 작가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보수 세력이 오히려 남북문제를 화끈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하며, 최고경영자 출신으로서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내세웠던 남북관계는 오히려 더욱 악화됐다.
MB가 강조했던 것은 자신이 최고경영자, 즉 CEO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이를 앞세워 실용주의는 물론 실무와 성과를 강조하면서 공직사회를 적극적으로 압박했다.
비서관들에게는 앉아서 일하지 말고 현장을 돌아다니라고 지시했다. 정부종합청사에서는 조기 출근은 기본이고 일요일 근무는 필수이며, 현안은 현장에서 점검해야 한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통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8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정부 조직과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선진사회와 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의 아픔과 고충, 억울함을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기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책을 추진할 때 국민에게 사전에 알리고 의견을 반영하며, 정책 시행 이후에도 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는 소통이 소홀했다고 밝혔다. 공직자에게는 중요한 정책을 국민에게 철저히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지적은 대의민주주의와 민주공화정의 원리에 비춰볼 때 타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국정운영은 다르게 움직였다.
국민의 아픔과 고충,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을 집행해야 했지만, 현실에서는 정책을 시행한 뒤 그 결과를 알리는 데 그쳤다. 사전에 민의를 충분히 듣고 반영하는 과정은 생략됐고, 국민은 결정된 정책을 사후에 통보받는 수동적인 존재에 머물렀다.
'명박산성'이라는 상징적인 장면이 등장했고, '불통 정부', '불도저 리더십'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장에 나와서도 소통은 일방통행식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소통의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여기에서는 독특한 화법이 형성됐다. 이른바 '내가 한때' 화법이었다.
'내가 한때 해봐서 안다'는 식의 화법으로, '전지전능 화법'이라고도 불렸다. 과거 자신이 경험했으니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본인은 한때 경험했을지 모르지만, 현장에서 지금까지 계속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경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단편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앞세우기보다 지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자신의 목표에 맞춰 다양한 의견을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반대하는 이들을 특정 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책적 역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정부 부처 업무보고나 국무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차관을 중심으로 한 정식 보고 체계를 건너뛰고, 배석한 국장이나 과장 등 실무자들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사업의 세부 수치와 공사 진척 상황을 조목조목 물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건설사 사장 시절 해봐서 아는데”라는 표현과 함께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국정운영의 체계를 흔드는 행태였다.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지엽적인 지적에 매달리게 되고, 창의적인 행정이나 소신 있는 정책 집행은 어려워진다.
반대로 대통령의 명령과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이른바 '영혼 없는 공무원'을 양산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대통령 앞에서 눈치를 보느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행태는 정책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MB는 CEO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실무형 지도와 지시를 표방했다. 이 역시 실용주의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사안까지 지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른바 '깨알 지시' 또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라는 표현이 등장한 배경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세부적인 사항까지 직접 지시하면서, 실무자들이 담당해야 할 일까지 대통령이 하나하나 명령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2010년 배추 가격이 오르자 자신의 식탁에 값싼 양배추로 만든 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시 양배추 가격 역시 이미 오른 상태였다. 솔선수범의 뜻을 전하려 했을지 모르지만, 실무진이 조율할 식탁 메뉴까지 최고 통치권자가 직접 지시한 셈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으로 흔히 알려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일화에 비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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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원, 4대강 감사결과 발표 (제공=연합뉴스) |
4대강 사업에서도 대통령이 보의 위치와 준설 깊이 등 구체적인 사항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국토부는 전문가 자문을 받아 2~3m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대통령이 6m 준설을 관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전문가의 판단보다 최고권력자의 의지가 앞서는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2012년에는 주요 농축산물과 생필품마다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배추와 휘발유 등 품목별로 실·국장급 담당자를 지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197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나 볼 법한 방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실효성 없는 '호통 정책'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공무원에게 개별 품목의 가격과 공급을 관리하도록 한다고 해서 시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경제 정책의 문제를 외면하고, 실무 공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행정 방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는 실용주의에는 일관된 정책 철학이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석열조차 4대 국정운영 원칙 가운데 하나로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박정희의 정책이든 김대중의 정책이든 유용하다면 가리지 않고 수용하겠다는 태도는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경계해야 할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정책의 유용성만을 앞세우다 보면 그 정책이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 장기적인 사회적 영향을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과 실무 담당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자율적인 소신 행정과 창의적인 정책 기획·집행이 가능하도록 전체적인 방향을 이끄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일반 실무자들이 해결하거나 조율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숙고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넘어 중장기적인 정책 대안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사회 각 분야의 구성원들이 뜻하지 않게 갈등하고 반목할 때 이를 조정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당장 성과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때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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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새벽에 엑스에 올린 게시글 캡처 |
이재명 대통령 역시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에서 세부적인 사안까지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때로는 비판에 직접 대응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곧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대통령의 경험과 판단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일수록 참모와 공직자들의 자율적인 판단이 위축되거나 국민과의 소통이 일방적인 설명으로 흐를 위험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역할은 모든 문제에 직접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성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며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원칙을 뒤로 미루거나,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인 지시를 반복한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백성들이 왕이나 권력자의 존재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평온하게 살아갈 때를 태평성대라고 여겼다.
'고복격양(鼓腹擊壤)'이 바로 그것이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며,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니, 왕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日出而作 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帝力何有于我哉)"
왕이 잘하는 일을 애써 알리지 않아도 백성들은 이미 삶을 통해 알고 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SNS를 통해 국정운영의 성과를 끊임없이 알리려 애쓸 필요는 없다.
잘하는 정치는 국민이 먼저 체감한다. 그 성과를 평가하고 알릴 통로도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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