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부가 무너진 느낌”…유시춘이 증언한 ‘사람 이해찬’, 동지의 눈물 [시사타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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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00:40:51
시사타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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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1988년 3월 31일 제13대 총선에 출마한 관악구 이해찬 후보의 유세. 2026.1.25 (사진=연합뉴스)

 

시사타파TV가 26일 밤 10시30분 ‘특별 추모방송’을 편성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추모했다. 방송 진행은 이종원 시사타파뉴스 대표기자가 맡았고, 출연자로는 유시춘 EBS 이사장이 자리했다. 이날 방송은 정치인의 업적을 나열하는 형식이 아니라, 1987년 6월항쟁을 함께 건너온 동지가 동지를 보내는 증언의 자리였다.

유시춘 이사장은 방송 내내 이해찬을 ‘정치인’보다 먼저 ‘동지’, 그리고 ‘친구’로 호명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는 대목에서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뉴스를 듣고 30분을 울었다…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유 이사장은 별세 소식을 접한 직후의 심경부터 꺼냈다. “뉴스가 믿기지 않았다. 30분은 정신없이 울었다”고 말한 그는, 김대중이 노무현 서거 당시 남겼던 말로 알려진 “내 무엇인가가 무너졌다”는 표현이 떠올랐다고 했다. 방송 초반부터 눈가가 젖어 있던 그는 이 대표기자가 “지금도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자 잠시 말을 고른 뒤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고 되뇌었다.

그의 감정은 단순한 애도가 아니었다. 함께 한 시대를 버텨낸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가까웠다.

첫 만남은 유치장이었다…“날카로운 눈빛,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판단”

유시춘 이사장은 이해찬과의 첫 만남을 1984년 가을로 특정했다. 유시민이 ‘폭력범’으로 몰려 구속됐던 시기, 서울대 인근 경찰서 유치장 면회를 갔다가 “면회실에서 처음 대면했다”는 것이다.

첫인상은 “몸 전체가 날카로운 느낌, 눈빛이 유난히 날카로웠다”였다. 그러나 그날 울며 면회실을 나서는 자신에게 이해찬은 사건의 구조와 당시 정세를 차분하게 설명해줬다고 한다. 유 이사장은 “그 분석이 신경 안정제처럼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해찬을 두고 “날카로운 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혼란 속에서도 판단을 잃지 않는 안정감을 핵심으로 짚었다. 

 

▲ 민통련 의장 김근태와 정책실장 이해찬.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전략이 함께 있던 시절.(출처=이해찬 블로그)

1987년 국본…“정세를 읽고 길을 제시한 사람”

방송의 중심에는 1987년 6월항쟁, 그리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기억이 놓였다. 유 이사장은 당시 이해찬을 “정세 분석을 가장 정확하게 하던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추모 집회가 대학가 중심에 머물자, 전두환 정권은 이를 ‘학생들만의 움직임’으로 얕봤고, 결국 4·13 호헌 조치로 맞섰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 국면에서 “국민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판단이 필요해졌고, 국본 결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이해찬이 당시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정책실장으로서 국본 결성의 방향과 핵심을 주도했다고 증언했다.

“보름 만에 국본…매일 회의, 매일 장소를 바꿨다”

국본이 짧은 시간 안에 출범하고 항쟁을 견인할 수 있었던 배경도 구체적으로 전해졌다.
“매일 회의했다. 장소를 매일 바꿨다”는 말과 함께, 회의록을 작성하던 자신이 “쓴 회의록이 다음날 안기부 직원 손에 들어와 있었다”고 말하며 당시 내부 침투와 도청의 공포를 언급했다. 마지막 회의 장소로는 압구정동 인근 카페를 특정하기도 했다.

집회 본거지로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대형 집회가 많지 않았고, 경찰이 설마 이곳일 줄은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밀한 판단과 계산이 항쟁의 성공을 떠받쳤다는 증언이었다.

“민주당 합류는 신의 한 수…목적을 본 사람이었다”

유시춘 이사장은 국본 내부에서 가장 격렬했던 논쟁으로 ‘정치권 참여 여부’를 꼽았다. 민주당을 합류시킬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지만, 이해찬은 목표 달성을 위한 효율을 이유로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설득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합류는 지금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고 평가했다. 이 대목에서 이해찬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 현실을 선택할 줄 아는 정치적 리얼리스트로 그려졌다.

 

▲ 2016년 6월 미국 LA. 노무현 시민센터 건립을 앞두고 현지 대통령 기념관 운영 사례를 살피던 중, 유시춘 EBS 이사장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한인 식당에서 함께 찍은 사진. 유 이사장은 “정치인의 얼굴이 아니라, 동지 앞에서 잠시 내려놓은 이해찬의 모습”이라고 회상했다.(제공=유시춘 이사장)

LA에서 찍은 사진 한 장…“웃을 때는 소년 같았다”


방송 후반부에는 이해찬과 유시춘이 2016년 6월 미국 LA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소개됐다. 노무현 시민센터 건립을 앞두고 미국의 대통령 기념관 운영 사례를 살피기 위해 방문했을 당시, 한인 식당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유 이사장은 “사진을 보면 이해찬이 잘 웃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나와 있을 때는 소년처럼 웃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늘 무거웠지만, 동지 앞에서는 인간적인 얼굴을 보였다”며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속 이해찬은 정치인의 표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 건너온 동지 앞에서 잠시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내 친구 이해찬”…끝내 눈물이 터진 작별 인사

방송에서 가장 감정이 고조된 순간은 ‘내 친구 이해찬’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였다. 이 대표기자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면”이라고 묻자, 유시춘 이사장은 4·19 묘지의 시비를 떠올리며 “꿈길에 자주 와주길 바란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이해찬을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 “민주주의의 완성과 더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열정이 늘 가슴 속에 들끓던 사람”이었다며, “비록 나이가 들어 지팡이에 의지했지만 가슴은 영원한 청춘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유 이사장은 말을 잇지 못했고, 잠시 스튜디오는 침묵에 잠겼다.

“민주주의자로 기억되길”…유시춘이 남긴 부탁

이 대표기자는 방송 말미, 유시춘 이사장에게 “사람들이 이해찬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유 이사장은 잠시 생각한 뒤 단호하게 답했다. “민주주의자입니다.”


그는 이해찬을 특정 직함이나 정치적 성과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마다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준 사람”, “끝까지 사심 없이 공적 기준을 붙들고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오랜 감옥 생활과 고문 후유증,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난 시간들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 민주화운동 당시 유시춘은 추도회 준비위원으로서 거리 집회와 추모 행사를 조직했다. 훗날 이해찬과 함께 1987년 국본 활동을 이끈 동지적 인연은 이 시절 현장에서부터 이어졌다.(제공=유시춘 이사장)


“사심이 없었던 사람”…동지가 본 이해찬의 결


방송은 추모를 회고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유시춘 이사장은 “민주주의는 완성품이 아니다. 늘 보완하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깨어 감시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꽃처럼 시들어버린다”며, 윤석열 같은 권력이 등장하는 현실을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연결지어 경고했다. 추모의 언어는 곧 현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유 이사장은 이해찬의 삶을 관통하는 특징으로 “사심이 없었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인사 추천 과정에서도 지연·학연에 흔들리지 않았고, 친구인 자신이 추천해도 “듣지도 않더라”고 웃으며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정치인 중에 과연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방송은 이해찬을 ‘위기 때 찾게 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대중의 이미지와, 그 곁에서 본 동지의 결을 포개며 마무리됐다. 이 대표기자가 “고맙다, 벌써 그립다”고 하자, 유시춘 이사장은 “동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것이 행복했고 하늘에 감사드린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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